2.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산서원
입니다.

퇴계 이황(1501~1570),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교육자였던 퇴계선생이 학문을 수양하고 제자를 기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인격 수양의 터전이자 자연 속의 사색 공간이었다. 주변의 자연도 선생의 벗이었고 스승이었으며 소담한 도산서당은 그의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오늘날까지도 한국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되었으며 조선시대 교육 및 사회적 활동에서 널리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로 향촌 지식인들은 이 유산을 통해 성리학 교육을 적절하기 수행하기 위한 교육체계와 건축물을 창조하였으며, 전국에 걸쳐 성리학이 전파되는데 기여했다.

1

도산서당 현판

도산서당 현판은 세로 글씨로 새겨져 서당 남쪽 벽 가운데 기둥에 걸려있다. 퇴계 선생이 강학했던 서당의 현판이며 친필이다. 현판의 산(山) 자는 실제 산 모양을 본 뜬 상형문자, 서당이라는 두 글자도 예서체에서나 볼 수 있는 파책(예서에서 옆으로 긋는 획의 마지막 붓을 오른쪽으로 흐르게 뻗어 쓰는 필법)을 가미한 것이 이채롭다고 평가되고 있다.

2

겸재 정선 <도산서원>

사대부 화가였던 겸재가 퇴계 이황에 대한 깊은 존경을 담아 그려낸 그림이다. 겸재는 한 폭의 부채 그림으로 도산서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산세와 강, 바위 등을 묘사하였으며 서원 내의 각 부분 뿐 아니라 서원 주변의 언덕, 바위 등에도 명칭이 적혀 있어 지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낙동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서원으로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

3

매화시첩

퇴계 선생의 친필목판 인쇄본. 선생이 남긴 매화시 72제 107수 중에 스스로 선별한 62제 91수를 묶은 것이다. 선생은 유언으로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할 만큼 유독 매화를 아꼈으며, 그 각별한 마음을 시에 담았다.
호숫가 도산서당 몇 그루 매화꽃이 봄철을 맞이하여 주인 오길 기다리네 지난 해 국화시절 그대를 저 버렸으나 아름다운 그 기약 어찌 또 버릴까

4

도산십이곡

퇴계 선생이 만년에 도산서원을 세우고 학문에 열중하면서 사물을 대할 때 일어나는 감흥과 수양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63세 때의 작품으로 모두 12곡으로 구성되었다. 한글 시가를 만들어 백성들이 남녀노소가 함께 불러도 좋을 노래를 만들려고 하였으며 도산십이곡을 완성한 후 아이들에게 익히게 하여 아침저녁으로 부르게 하고 춤까지 추게 하고자 하였다. 오만을 배척하고 경계하며, 올바른 성정을 수양해나가자는 선생의 뜻은 수많은 시간이 흐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어지는 불변의 관념이다.

5

역락서재 현판

서원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역락서재의 현판이다. ‘역락’(亦樂)은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글에서 따왔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몰라주어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6

농운정사

도산서당의 서쪽에 위치한 8칸짜리 건물로 퇴계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공간이다. '농운'은 '언덕 위 구름'이란 뜻이며, '정사'는 '정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집'을 뜻한다. 공부하는 방을 '시습재'라 부르고 나이 든 제자들을 동쪽방, 젊은 제자들을 서쪽방에 두어 서로 부담이 없도록 하는 등, 퇴계 선생의 덕행과 가르침을 이어받고, 학문가의 자세를 갖추려는 제자 유림들에 대한 배려가 담긴 건축물이다.

7

시사단

1792년(정조 16년) 3월에 정조는 퇴계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여 규장각 학사 이만수를 보내 도산별과(지방 사람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실시한 특별과거)를 도산서원에서 실시하였는데, 이를 시행하고 기념하던 장소가 시사단이다. 비각은 4면 1칸인 팔작지붕 건물로 원래 도산서원과 마주 보는 강변 송림 안에 세워져 있었는데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10m 높이의 돌축대를 쌓아 옛 건물과 비를 그대로 옮겼다. 비각 안에 화강석으로 된 비석이 있다.

8

투호

주둥이가 긴 표주박 모양. 나무로 만들고 겉면이 가죽 같은 것으로 싸여 있다. 놀이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일명 '정심투호'라 한다. 복잡다단한 마음을 화살 끝에 모두 모아 병 속으로 던지다 보면, 유림들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바로잡힌 마음과 정신을 느꼈을 것이다. 수백 년 전의 인물인 퇴계 선생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힘을 썼다는 것, 그리고 수백 년 후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마음을 바로잡으려 애를 쓴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과업이자 축복이 아닐까.

9

혼천의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도하기 위해 사용하던 기구이다. 혼천의를 구성하는 각 환들이 모두 천체들의 운행과 궤도 등을 반영한 것으로 천문교육에 가장 적합하였다.

10

매화등

매화무늬의 청자기로 만든 의자. 매화에 대한 퇴계 선생의 사랑이 물리적으로 표출된 '매화 머천다이즈'. 캐릭터나 인물 등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담은 물건을 제작하거나 구매하는 현시대의 팬 문화를 보는 것만 같다.

11

정우당

도산서당 앞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깨끗한 벗이 있는 연못'이라는 의미처럼 이곳에 연을 심었다.

12

절우사

정우당 동쪽에 있는 샘물(몽천) 위의 산 기슭에 만든 화단의 이름'절개와 의리가 있는 벗'을 뜻하고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를 가꾸었다.

절우사 퇴계 선생의 시소나무와 국화는 이 동산에서 대나무와 더불어 세 벗이 됐네 매화는 어찌하여 이 셋에 못 끼는가이제 나는 어울려서 풍상계를 만드노니굳은 절개와 맑은 향기는 같은 동료로 이름이 나 있도다.

13

열정

도산서원 앞 마당에 돌로 쌓은 우물로 '맑은 우물'이란 뜻이다. 퇴계 선생이 이름을 지어주 고 돌우물 앞에 열정( 井이)이라 새긴 화강석을 세웠다. 열정(列井) -퇴계 선생의 시서당의 남쪽돌우물의 물은 달고 맑네천년 오랜 세월을 산 안개 속에 묻혀 있었으니 이제부터는 언제까지나 덮어 놓지를 말게나 돌 사이 우물 물이 너무 맑고 차가워 저 홀로 있어도 어찌 측은한 생각이 들 것인가 세상으로부터 물러난 사람 여기 터잡고 엎드려 사니 한 바가지 물로 샘과 내가 서로의 마음을 얻었네

14

몽천

도산서당 유정문 아래 동쪽에 장대석으로 4각으로 만든 작은 우물 앞에 몽천이라고 붉은 글씨로 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몽'은 산 밑에 샘이 나는 것을 말하는데, 주역에서는 몽괘가 있어 군자가 샘을 본받아서 행하며 덕을 기르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우물은 배우는 사람의 능동적인 의지와 진실한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15

장판각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冊版)과 유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입교당 후면 왼쪽으로 비켜서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도리가 없는 구조이며, 습기를 피하기 위해 정면에 모두 판문(板門)을 달았다. 화마(火魔)를 막기 위해서 다른 건물과 거리를 두어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였다. 서원의 명문도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바로 판본의 소장량이다. 따라서 책을 발간하는 목판은 서원의 소중한 재산이었다.
선조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해오다가 목판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 목판 전량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겼다.

세계문화유산과
함께하는 테마관광

세계와 연결된 안동, 당신의 세계유산 문화여행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