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봉정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봉정사
입니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 탁 트인 병산 앞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유성룡(1542~1607)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어, 유교 건축의 미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누각 건물인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은 병산의 자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유생들이 교육을 받던 강당인 입교당에서는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자연 친화적이고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는 곳으로, 우리 민족의 절제된 마음과 자연을 지켜가고자 하는 민족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 교육과 사회의 중심이자, 유교적 삶의 태도를 길렀던 공간이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되었으며 조선시대 교육 및 사회적 활동에서 널리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로 향촌 지식인들은 이 유산을 통해 성리학 교육을 적절하기 수행하기 위한 교육체계와 건축물을 창조하였으며, 전국에 걸쳐 성리학이 전파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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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집

불상 위에 목조건물의 처마구조물처럼 만든 조형물. 따로 지어놓은 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봉정사의 닫집은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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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석가모니삼존상이 모셔져 있는 중심 법당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에 정명 툇마루를 덧댄 장방형 건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된다. 건물 안쪽에 단청이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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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고려 시대에 건립되었으나 통일 신라 시대 건축양식을 따랐다. 앞면 3칸, 옆면 4칸 규모로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 불상을 모셔 놓고그 위로 불상을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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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당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만든 봉황새를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건물은 극락전 앞에 동향(東向)으로 서 있으며 원래 불상을 모시는 부속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승려가 기거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비록 건물은 작지만 다양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구조가 꼼꼼히 짜인 건축물로 주목 받고 있는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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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석탑

봉정사 극락전의 영역에 있고, 상하 기단 위에3층의 탑신부를 올린 고려시대 석탑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기단에 비해 폭이 좁아진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 크기가 위로 갈수록 적당하게 줄어들면서 폭의 변화가 적다.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고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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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강당

극락전 앞마당 향우측에 세워져 있으며 고금당의 맞은편에 있는 강당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양법당중수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 지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짐.대웅전보다 간결한 형태의 장식성을 사용하고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기둥은 낮지만 공포를 크게 잡아 겉모습의 균형을 살리고 있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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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루

대웅전 앞에 있는 2층의 누각형태를 한 누문정면 5칸측면 3칸 규모 맞배지붕앞면에서 보면 2층이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 아래층 가운데 칸 에 출입문을 두었으며, 위층은 네모난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다.
봉정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누문으로 원래는 덕휘루로 불렸으나 언제 이름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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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암

봉정사 동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응진전, 영회실, 송암당, 삼성각, 우회루관심당 등 5동으로 이루어진 봉정사의 부속암자이다.정원의 구조가 독특하고 아름다워 한국의 10대 정원 중 하나라고 알려졌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영화 촬영지이다.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 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건축적으로 크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없으나 우회루와 송암당 등에서폐쇄적인 공간을 개방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삼성각 앞의 조경수법도 경직될 수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유도한 것 등은 뛰어난 공간처리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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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동종

조선 순조 13년(1813)에 만들어진 것으로 크기는 높이 67cm, 음통 높이 22cm, 종입구 지름 55cm이다. 전체적으로 어깨 부분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부분부터 종 입구까지는 거의 직선이다.종 머리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한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는 음통이 있는데 음통의 구멍은 막혀 있다. 종은 가로로 선을 돌려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가장 윗부분에는 서있는 모습의 보살상을 2구 조각하여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9개의 유두를 새긴 사각형 유곽이 있다.가운데 부분에는 범자가 새겨진 동그란 원 4개를 배치하였고 그 나머지 여백에는 종의 내력을 적은 글이 새겨져 있다.비록 약식화되고 형식화되었으나 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양식을 갖추고 있어 19세기에 만들어진 종으로서 신라,고려 시대의 종 모습을 모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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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설법도

가로 384.5cm, 세로 317cm이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다.조선조 후기 아미타설법도상의 규범이 되며 17세기와는 다른 18세기 최반의 화풍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불교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다.1713년 도익(道益) 등이 조성한 불화로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좌우에 10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 제자, 벽지불, 사천왕, 팔금강들을배치하였다.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의 비중을 작게 함으로서다수의 권속들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답답하지 않은화면을 구성한다. 원만한 상호묘사와 균형 잡힌 신체묘사, 유려한 필치,금니의 화문 등 동일한 화승이 제작한 1731년 수다사 영산회상도 및삼장보살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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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회 괘불도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 괘불이다.화면구성이 경상도 지역 영산회괘불화 도상과 기본적으로 유사하나 좌우 8구의 협시보살 을 비교적 크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 중앙에 커다랗게 표현된 석가모니를 중심으 로 8보살과 10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는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화면에 도상들을 부각시켜 꽉차게 묘사하였다. 불보살상의 상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양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육신선과 옷의 처리는 비교적 굵은 선묘로 힘 있고 유연하게 처리한 것이 돋보인다.
색채는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명도와 채도가 낮아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감을 보인다. 하지만 보살의 의복에 금색 장식을 사용하고 화면 맨 위로 살짝 드러난 하늘에 백색의 꽃무늬를 넣고 황색과 분홍색, 녹색 채운(彩雲, 여러 빛깔의 고운 구름)을 활용하여 화사함을 더하고 있다. 보살상의 하반신 수식 장식에는 금박으로 처리하여 포인트를 주고 있다. 18세기 괘불 중에서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뿐아니라 화풍도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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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회상벽화

1997년에 발견되어 현재는 사찰박물관에 보관화면은 중방부분이 휘어지면서 부분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자연적 또는 인위적을 훼손된 부분이 많아 제 모습을 상당히 잃었으나 구도 및 색채, 일부 문양 등은 판별이 가능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는 도상으로 남아 있는 화기를 통해 석가모 니불이 영축산에서 「표법연화경」을 설하실 때의 장면을 도해한 <영산회상도>이다.

전반에 걸친 무거운 적녹색 위주의 채색을 사용하여 다소 묵직한 느낌이 강하지만, 본존불의 선홍색 법의와 호분이 많이 가미된 연하늘색과 연분홍색 등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뛰어난 필치와 밀도 높은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1935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회상도>로서 1476년 <강진무위사아미타후불벽화>와 함께 조선 초기 불화의 쌍벽을 이루는 벽화이며 이후 전개될 군도형식의 영산회상도는 물론 여타 불화도의 조형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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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관음보살좌상

여러 개의 나무들을 접합한 접목조기법으로 이루어졌으며 눈은 수정을 감입하였다. 높이 105cm, 폭 63cm의 크기이다.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있으며 머리카락 일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상체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었고 가슴 부분에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고려후기 새롭게 대두하는 신고전주의 양식 불상의 시원적 형태를 간직한 상으로 이러한 불상 양식의 성립과 전개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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